ⓒ김흥구

12월에, ‘12월 이야기’를 들었다. 소설가 한강이랑 듀엣으로 부른 이 노래. 겨울이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은 노래. 노랫말처럼 ‘모든 것이 흩어져도 가슴속에 남은 노래’. 그런데 이 노래 부른 사람이 누구더라.

가수 이지상(58). 이름은 몰라도 그가 만들고 부른 노래는 안다. 양희은의 노래로도 잘 알려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작업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 추모곡 ‘그 쇳물 쓰지 마라’, 1990년대 학생운동 진영의 인기곡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

이지상은 2022년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1991년 전대협 통일노래한마당에서 ‘통일은 됐어’라는 노래로 입상한 후 꼭 30년이다. 이후 대학 노래운동의 상징과 같은 ‘조국과 청춘’을 창단하고, 가수 손병휘·이정열 등과 함께 ‘노래마을’에서 활동했다. 노래가 곧 운동이던 시절, 우리는 그와 그의 노래에 빚진 시대를 지나왔다.

최근에는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다. 정호승 시인과 곽노현 전 서울교육감이 이야기 손님으로 나섰고, 노래패 우리나라와 평화의나무 합창단이 함께했다. 콘서트 사회자는 그를 ‘평화를 노래하고 위로를 건네는 가수’라고 소개했다.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나의 늙은 애인아’였다. 2020년 6집 앨범 수록곡이다. ‘나의 늙은 애인아/ 어감도 좋은 나의 늙은 애인아/ 볕 좋은 마루 위 고양이처럼/ 순하게 늙어가자.’

그러나 그의 지난 30년은 시대와 억세게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미군에게 살해당한 윤금이(‘보산리 그 겨울’), 손배 가압류에 맞서 항거한 배달호(‘지친 날개를 접고’), 일본의 민족학교 아이들(‘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김득구’),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희생자(‘편지’)를 기리는 노래를 만들고 불러왔다. 그의 노래 목록이 곧 우리 현대사의 ‘만인보’다.

가수 이지상은 어쩌면 그의 부분일 뿐이다. 그동안 〈은평시민신문〉 이사장으로, 남북 철도 연결을 꿈꾸는 ‘희망래일’ 이사로, 시민단체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일했다.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등 세 권의 책을 썼고,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사진전도 열 생각이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은 사람이다.

지난 30년을 돌이켜 노래 몇 곡을 골라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흐린 눈빛으로’라는 노래를 맨 처음 꼽았다. “이렇게 살겠다”라는 다짐을 담았노라고 했다. ‘흐린 눈빛으로는 그 어떤 시선도 마주하지 않겠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 하지 않는다면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겠는가··· 생의 미련이 다하는 그날까진 서툰 나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