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학교 19기 6강은 정종배 시인의 해설과 함께 망우리 역사문화공원을 걷는 답사로 진행되었습니다. 대륙학교 1기 동문 유동걸 선생님의 후기를 따라, ‘망우리 공동묘지’라는 이름 뒤에 겹겹이 쌓인 근현대 인물들의 삶과 죽음, 역사와 기억의 흔적을 다시 살펴봅니다.
박인환에서 시작해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 표지비까지 약 4~5km의 길을 걷는 동안 문학가·독립운동가·정치인·예술가와 이름 없는 죽음의 흔적까지 마주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공과로 단순히 나누기보다, 그 안에 함께 스며든 빛과 그림자를 살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답사 한눈에 보기 일시 2026.05.02 장소 망우리 역사문화공원 해설 정종배 시인 후기 대륙학교 1기 동문 유동걸 흐름 박인환 → 송석하 → 이중섭 → 김영랑 → 최학송 → 계용묵 → 조봉암 → 한용운 → 방정환 → 아사카와 다쿠미 → 지석영 → 유관순 열사 표지비 등
01 · 첫 무덤, 박인환
‘목마와 숙녀’ 너머의 박인환
답사는 박인환의 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더니즘과 우수의 시인으로만 기억되기 쉽지만, 강렬한 항일 저항시를 남겼고 구인회 활동과 서점 ‘마리서사’를 통해 문학 교류의 장을 만들었던 면모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02 · 석남 송석하
한국 민속학의 아버지를 만나다
송석하는 일본 유학 중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겪은 뒤 귀국해 조선민속학회와 학회지 《조선민속》 창간에 힘썼습니다. 지금은 무덤이 이장되고 묘비만 남아 있어 한국 민속학의 초기 기반을 세운 인물의 흔적을 더욱 쓸쓸하게 마주하게 했습니다.
03 · 화가 이중섭
예술혼과 상처, 그리움
이중섭의 묘소에서는 천재 화가의 명성보다 가난과 병, 가족과의 이산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생전 그를 아끼던 벗들이 돈을 모아 그를 망우리에 안장했다는 사연과, 그가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했던 마음은 고요한 묘역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04 · ‘독을 차고’, 김영랑
순수 서정시인의 이면에 있던 저항
김영랑은 ‘모란이 피기까지는’으로 익숙한 순수 서정시인이며, 그 이면에는 강렬한 독립·항일 의식이 있었습니다. 정종배 시인이 정성스레 비를 세우고 가꾸어 놓은 묘역은 이곳 망우에서 백모란 두 송이와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05 · 국민강녕탑
한 사람의 손으로 쌓아 올린 작은 기원
용마산·아차산 일대에서 평생 쓰레기를 주워온 최고학 옹이 국민의 행복을 바라며 쌓은 탑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건강하고 가족 행복하다’는 말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06 · 서해 최학송
빈궁 문학이 품은 가난과 저항
간도와 만주의 궁핍과 유랑을 바탕으로 「홍염」과 「탈출기」를 남긴 최학송은 서른한 살에 요절했습니다. 그의 묘는 화려하지 않지만 식민지 민중의 가난과 고통, 저항을 문학으로 남긴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07 · ‘백치 아다다’의 계용묵
작품의 기억이 묘비에 남아 있는 자리
계용묵의 묘비 뒤에는 「백치 아다다」, 「병풍에 그린 닭이」, 「별을 헨다」 등의 작품명이 적혀 있습니다. 작품 속 가난과 상실의 정서가 묘역의 고요함과 겹치며 한 작가의 생애와 문학을 함께 떠올리게 했습니다.
08 · 설산 장덕수
한 인물 안에 겹쳐진 영광과 오점
장덕수의 묘는 독립운동과 언론 활동, 해방 이후 정치 활동의 공과 함께 친일 행적까지 한 인물 안에 겹쳐 있음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추모와 비판을 한쪽으로 정리하기보다 근현대사의 복잡한 균열을 그대로 마주하게 했습니다.
09 · 사이토 오토사쿠
근대화와 수탈이 함께 보여준 흔적
조선총독부 초대 산림과장이었던 사이토 오토사쿠는 산림 정책과 식림 사업에 관여한 동시에 식민 통치 아래 산림 수탈 체계를 설계한 관료이기도 했습니다. 봉분 없는 일본식 묘는 식민지 근대화와 수탈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함께 생각하게 했습니다.
10 · 죽산 조봉암
글 없는 백비가 말하는 현대사의 비극
조봉암의 묘역은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당한 뒤 오랫동안 제대로 말해지지 못했던 죽음을 상징하는 ‘백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 재심 무죄 판결을 거치며 이곳은 민주주의와 사법 정의를 다시 묻는 역사 현장이 되었습니다.
11 · 만해 한용운
시와 독립, 불교개혁이 만난 삶
한용운의 묘소에서는 시인과 승려, 독립운동가라는 여러 삶이 하나로 만납니다. 일제의 감시와 가난 속에서도 창씨개명과 학병을 거부했던 그의 기개와 「님의 침묵」의 문장이 망우의 고요한 숲에서 다시 살아나는 듯했습니다.
12 · 호암 문일평과 위창 오세창
역사와 글씨로 지켜낸 민족의 정신
문일평은 식민사관에 맞서 ‘조선 정신’을 강조한 사학자였고, 오세창은 3·1운동 민족대표이자 서화가였습니다. 한 사람은 역사의 말로, 다른 한 사람은 글씨와 독립운동으로 민족의 정신을 지켰다는 점에서 서로를 비추는 인물로 다가왔습니다.
13 · 소파 방정환
어린 혼을 위하려는 빛과 그 밑 그림자
방정환은 어린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처음 높여 부른 '소파'이며, 《어린이》 창간과 색동회, 어린이날 제정에 힘쓴 인물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 문인 김명순을 둘러싼 언어적 가해에 가담했다는 비판도 남아 있어 한 인물의 업적과 한계를 함께 바라보게 했습니다.
14 · 아사카와 다쿠미
정종배 시인의 삶을 바꾼 만남
아사카와 다쿠미는 식민지 조선의 공예와 자연, 사람을 존중하고 그 아름다움을 알리려 했던 일본인이었습니다. 아사카와는 정종배 시인에게 ‘사랑은 실천’이라는 삶의 방향을 남겼고, 그의 시는 생활 윤리의 실천까지도 확장되었습니다.
15 · 송촌 지석영
근대화의 공로와 식민 협력의 경계
지석영은 우두법 보급과 의학교육, 한글 연구에 큰 공을 세웠지만 일제강점기 관직 참여와 동학농민군 진압 등으로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의 묘소는 근대화의 성취와 식민 협력의 경계가 얼마나 복잡한지를 되묻게 했습니다.
16 · 노고산 천골 위령비
이름 없이 밀려난 죽음들의 기억
노고산공동묘지가 택지 개발로 사라질 때 연고 없는 유골을 망우리로 옮겨 합장한 사실을 알리는 비석입니다. 특정한 한 사람의 무덤이 아니라 도시 개발 과정에서 밀려난 연고 없는 죽음들을 기억하게 하는 장소라는 점에서 망우리의 또 다른 역사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7 · 유관순 열사 분묘합장 표지비
정확한 묘를 잃은 뒤 남은 기억의 표지
유관순 열사는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한 뒤 이태원공동묘지에 묻혔지만 공동묘지 정비와 이장 과정에서 정확한 위치를 잃었습니다. 지금의 표지비는 그 흔적을 기리는 상징물로 식민지 폭력과 망각의 비극을 더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답사를 마치며
삶과 죽음 사이에 스며든 빛과 그림자를 걷다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묘역을 빠르게 지나야 했다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망우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역사의 숨결과 사람의 자취, 떠난 뒤의 쓸쓸함과 내일의 희망을 함께 품어볼 수 있었습니다. 오롯한 사람도, 방황한 영혼도 있었던 이 길 끝에서 결국 남는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수많은 빛과 그림자가 함께 스며든 역사 앞에서,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